the Way Into the New Generation! W.I.N.G!
경험자의 목소리
지금까지 우리의 활동에 참가했던 워킹 홀리데이 스태프들을 소개합니다.
하연수 Ha Yeon-Su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모모의 집”에서 일했던 하연수라고 합니다.
제가 일한 것은 2008년 여름부터 2009년 여름까지 1년 동안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소개로 일하는 것이 되고 처음으로 모모에 갔을 때 모두가 웃는 얼굴로 환영해 줘서 기뻤습니다. 그 기쁨은 제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경험이 시작될 것을 알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정말 좋다고 느낀 것은 그런 시설이 도회지에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시설이 시골 쪽이나 자연과 가까운 장소에 있으니까, 장애인인 이용자들이 일반인과 같은 것을 경험할 수가 있는 기회가 적습니다.
그래서 이용자분들과 함께 쇼핑을 하거나 외출하거나 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나가노현에 여행한 것도 저와 이용자분들과의 즐거운 추억입니다.
W.I.N.G의 활동 프로그램에서는 스텝(직원)이 거의 하루도 이용자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숍 상품을 만들거나 외출하거나 노래를 하거나, 뭐든지 “함께”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스텝들은 이용자와 커뮤니케이션이나 공감도 잘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어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일을 배우는 것도 선배들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도 할 수가 없고, 제가 이용자분들과 사이가 좋게 될 수가 있는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면 그 사람은 그것을 알아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용자분들 활동을 “돕자”라는 마음이 1년이 지난 무렵에는 반대로 “여러가지 많이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이용자분들에게도 같은 시기에 일했던 워킹 할리데이 스텝들에게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니, 조심해야 되는 것도 많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보람이 있는 일이라서 자신을 성장시켜줬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기초로 지금 저는 더 넓은 세계에 나갈 다음 도전을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용자 여러분, 이용자 부모님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언제나 도와 주신 코바야시상, 니시츠지상, 사토상, 타키상, 정말 고맙습니다!
Jang Ju Sun
이 곳 유메이코에서 근무하게 된지 2달 밖에 되지 않은 경험으로 이런 소감문을 쓴다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또 한편으로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시간들로도 충분히 이 곳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얼마나 가치있고 보람찬 것인가를 열거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막연하게나마 일본에서의 생활과 그 속에서도 복지체제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뜻밖의 기회가 닿았고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장애인 보호시설 속에서 또 다른 일본문화까지 체험하게 되는 행운을 갖게된 나로써는 더 없이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되지 않는 언어(지금도 큰 변화는 없는), 그리고 일본사람들에 대한 근거없는 선입견들로 인해 하루하루가 너무 고달프고 다시금 입대하는 마음 가짐으로 버턴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스텝들과 이 기관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열린 마음’이라는 모토자체가 타문화권의 외국인스텝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오히려 더 적응하는 것에 대한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이 기관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것을 날이 가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Ha Kyeonwon
From July 2, 2009 until June 15,2010
저는 2009년 7월부터 약 1년간 유메히코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한 학기 남겨둔 저로써는 학생신분일 때가 아니면 언제 한번 외국생활을 해보겠냐는 생각에 막연히 일본을 택하게 되었고 유메히코는 저의 일본생활의 길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처음 면접을 보던 날 모든 것이 새롭고 놀랍기만 한 Àú¿¡°Ô 노부짱의 씩씩한 고함소리, 유리짱의 힘찬 몸 동작을 보고는 유메히코에 대하여 실감하게 되었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 라는 의문도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한 제게 유메히코는 문을 열어 주었고, 다음은 저의 마음의 문을 열 차례였습니다.
처음은 군대도 갔다 왔는데 뭘 못하겠어? 라는 마음으로 부딪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출근¡¦ 무척 긴장 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유메히코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일본 생활, 일본어 아무것도 익숙하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해 선 듯 다가서지 못하는 저에게 일본인 스태프들과 기존의 워킹홀리데이 스태프는 웃음으로 저를 맞이하며 먼저 자신들의 마음을 열어 저를 이끌어 주며 그 누구 하나 귀찮은 내색 없이 친절하고 상냥하게 직접 몸으로 보여 주시며 하나하나 차근차근 유메히코에 대하여 적응하기 쉽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처음은 시설 이용자들의 이름을 외우고 정해진 스케줄에 맞추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것부터 이용자 개개인의 특성까지. 첫 출근 후 일주일 동안은 누가 누구를 보살펴야 하는지 오히려 제가 보살핌을 당한 기분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물론 접해보지 않았던 일 이였기에 거부감이 없지 않았지만 일이 익숙해 져 갈수록 새로운 것이 보이고 이용자들의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씩 그들과의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고 선입관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들과 동화되어가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메히코의 이용자들은 대부분이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심신 장애인으로써 식사, 용변과 같은 생리적인 욕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분들입니다. 난생 처음 제 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으로 음식을 넣어보았고 용변 후의 뒤 처리까지 모든 일이 어느 하나 스태프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거부감이 들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고 스태프는 물론 이용자들과 정이 쌓이게 되고 농담도 해가며 웃고 또한 떠나는 스태프가 있을 땐 서로 눈물을 보이며 슬픔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무엇인가 가슴에서 벅차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정말 보람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느낀 점은 말을 하지 못해도, 몸을 움직이지 못해도,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며 또한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해결 해 주는 것이 유메히코의 일이며 장애를 가진 이들은 평생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집에서만 있을 것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똑 같은 생활을 영유해 나가야 할 권리가 있으며 사회 또한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유메히코에 왔을 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파란 눈과 노란 머리, 검은 눈 모두 한 공간에 모여 가족같이 웃으며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여러 나라의 문화를 한 곳에서 겪을 수 있다는 것이 유메히코의 큰 장점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일을 시작 하기 전 일본어 실력 부족으로 걱정을 많이 하였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이 곳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으로 서로를 느끼며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언어는 아주 작은 걸림돌일 뿐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말을 나눈 ¡° 패트릭¡± 이라는 캐나다에서 온 워킹홀리데이 스태프는 일본어로 ¡° 안녕하세요 저는 패트릭 입니다¡± 이 말 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이용자들을 즐겁게 해주며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김현주 (2001/06~2002/06)
저는 2001년 6월부터 2002년 6월까지 약 1여년간 유메히코와 함께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걸 생각했고, 많은 걸 느꼈습니다.
처음 유메히코에 전화를 걸었을 때입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습니다. 영어와 같은 서양 주요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대개 비슷한 상황입니다. 파견회사, 동네 음식점 등 두드려는 보았으나, 연이은 퇴짜로 풀이 죽었습니다. 적어도 먼저 워킹 홀리데이로 있었던 뉴질랜드에선 레스토랑 설거지나, 청소정도는 쉽게 구할 수가 있었지만요. 워킹 홀리데이 센터에 문의를 하자, 한국 담당자분께서 장애인 데이 센터인 유메히코를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한국인인 제게 소개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곳 이였습니다. 혹시나 하며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사무를 보시는 오오츠키상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무작정 일본에 간지 2주째로 넘어갈 때였습니다.
그렇게 유메히코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날은 참 기묘했습니다. 묵고있던 외국인 전용 게스트 하우스인, 오렌지 하우스의 따뜻한 여주인 히사모토상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거든요. 거부, 소외되는 이방인, 무능력한 한국인 등등 부정적인 단어들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메히코를 가니, 모두가 저를 향해 웃어주었습니다. 이 당혹감. 그 날은 스탭들의 정기 월례회의 날로 이용자들은 없었습니다. 문을 연 순간 반도상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경쾌하게 인사합니다. 30여명의 스탭들은 상을 여럿 붙여서 왁자지껄하게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걸까.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면접도 아니고, 오자마자 채용되었다는 행운도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손님이 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나라 한국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나라 한국에서 온 친구, 일본문화를 배우기 위해 온 외국인으로 당당하게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금요일의 기묘함이 계속 마음에 물음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장애인 데이 센터인 유메히코로의 첫출근이었습니다. 9시까지 갔었는지 10시였는지 이용자 중 누구를 제일 처음 만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지. 하루 일과가 끝나고, 대표이신 스가노상과 나눈 이야기와 그 때의 감정이 기억납니다. 저는 두려웠고,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면접은 이용자들과 만난 첫날 이후 제가 도망치느냐 아니냐였습니다.
이용자들은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대부분은 누워서 지내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동을 할 수 없는 분이 많습니다. 언어와 같은 일상적인 소통 역시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전문적인 의료치료를 받아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을 가진 환자가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처럼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건강상태를 지니신 분들입니다. 데이센터 유메히코에서는 이용자들이 집에서만 갇혀있지 않고, 사회로 나와야 한다는 취지에서 낮시간동안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곳입니다. 스탭의 역할은 그런 이용자들의 사회생활을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처음 이용자들과 접하고서, 제가 속해 있는 일상과 사회는 아주 작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두려웠던 건, 저였습니다. 충격을 받은 것이 충격이었어요. 우물안 개구리인게 싫었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곧 행복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용자들보다는 스탭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해야하는 일의 순서, 각각 이용자상들에게 다른 개호 등을 익히는데 집중하였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처음 중증 장애인을 접하는 것에 대한 이질감의 극복, 그리고 화장실과 같은 사적인 일을 거드는 것에 대한 미안함.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것. 하지만 다른 스태프들에게는 벌써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상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도 조금씩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얼굴 한가득 웃으시는 반도상, 현명하고 재빠르신 코바야시상, 아키야마상, 타마에상, 하타상.. 따뜻한 농담과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소중한 가족처럼 이용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스탭들 사이에서도 질책하기 보다는 서로를 배려합니다. 조금 신기했습니다.
이용자들과의 개인적인 감정적 접촉은 아직 저에겐 어려웠습니다.
처음엔 타니상과 함께 였습니다. 타니상과는 언어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걸 말씀해주셔서, 그대로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 태도를 정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반응을 짐작할 수 없어서 다른 스탭들을 따라해 보았습니다. 아침 조례시간 카즈미짱의 손을 꼭 잡아봅니다. 카즈미짱은 크고 푸른 눈을 깜밖입니다. 맘속에서 혼잣말로 소개를 합니다. 잘부탁해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즈미짱의 손은 무척 따뜻했습니다.
일이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길 즈음, 조금씩 이용자 한분 한분의 개성과 감정 표현을 알아가게 되었고,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아란 투명한 흰자위가 선명한 카즈미짱, 피부미인 카나짱, 어여뿐 아야짱, 행복한 타니상, 사랑이 있는 히로코상, 목청이 좋은 귀염둥이 노부짱. 그리고 많은 남자 이용자들...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집니다. 접촉은 사람사이에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체온을 느끼고, 안아주고,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면, 표현하는 쪽이 오히려 더 행복해집니다. 눈치보지 않고 상대방을 맘껏 좋아하게 됩니다. 사랑한만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생각 않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기적일 필요도 개인적일 필요도 없어서 편했습니다. 1년 내내 웃기만 했습니다. 아직도 유메히코의 길고 좁은 방을 떠올리면 가만히 웃음이 납니다.
물론 저는 정식 스탭과는 달리 의무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좋고 이쁜 것들만 잔뜩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행운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학습되어 있는 지도 모릅니다.
신체가 부자유스런 사람을 만나면 측은하다. 불쌍하다 슬프다. 라고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외국인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듯 합니다.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선입관이 사라지고,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면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라고 알게 됩니다. 여태까지는 단지 같은 공간에, 같이 있을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자신의 감정으로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재활이 가능하고, 사회활동을 하실 수 있는 장애인들도 많습니다. 유메히코의 이용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좀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사회의 배려 없이는 인간의 기본적 활동인 먹는 것도, 화장실도 해결할 수 없는 분들입니다. 유메히코에서 배운 것은 장애인을 단지 개인의 불행으로 취급하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써 다양한 삶의 모습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사회의 책임과 배려를 다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용자들이 사회로 나오는 것은,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획일된 삶의 기준과 사고를 다시금 돌이켜보게 하는 경험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일방적 배려를 주고 받는게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시간이 됩니다. 유메히코는 이런 사회를 전염시키기 위해, 워킹 홀리데이로 온 외국인과 함께 일할 기회를 가지려 하는게 아닐까요.
저와 같은 외국인을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진 유메히코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웃음으로 서로를 감싸주는 따뜻한 스탭들, 잊고 싶지 않은 함께 일했던 워킹 홀리데이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유메히코를 만든 것은, 모두 이용자분들 입니다.
부끄럽게도 유메히코에서 배운 웃음과 함께 사는 사회는, 저의 현재가 아닙니다. 실천하고 있지 못합니다. 한 때의 추억이 아니라, 일상이 되기를.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기도합니다.
가끔, 커다란 바다나 지평선에 붙은 별을 볼때면 카즈미짱의 푸른 눈이 떠오릅니다. 그럴때면 좀 더 오랫동안 눈을 열어둡니다